[보신각 터]
대학동창 모임이 있어 간만에 종로를 나가 보니 모임장소가 바로 "보신각 터" 옆이다.
예전에 종각이라 불렀던 것 같기도 하고 보신각....긴가민가 아리송....
오늘은 약속시간 보다 넉넉하게 나왔기 때문에 "보신각 터"를 사진에도 담고 천천히 둘러보았다.
보신각 하면 그 해의 마지막 날인 31일 제야의 타종을 33번 치는 곳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안내판을 읽고 "보신각 터" 가 1919년 3월 독립선언과 광복 이듬해 3.1절 기념행사의 현장으로
민족사적인 의미가 깊은 곳이라는 걸 새삼 알게 되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아구 챙피해~~~
보신각(普信閣)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사거리에 있는 전통 한옥 누각이다.
보신각종을 걸어 놓기 위해 만든 것으로 정면 5칸, 측면 4칸의 구조로 되어 있다.
조선 태조 5년(1396) 창건했다가, 고종 6년(1869), 1979년 8월 재건했다.
보신각 터(普信閣址)라는 명칭으로 1997년 11월 10일에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10호로 지정되었다.
(출처 : 위키백과사전)
보신각....
(보신각 터 - 안내판)
"보신각 터" 안내판의 내용을 보니 운래는 종각으로 불렀다 고종때 다시 지으며 보신각으로 바뀌었다 하네요.
서울 보신각의 종은 보물 제2호 이며 현재 국립박물관에 있다고 합니다.
지정번호 :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 10호/시대 : 1306년 (태조 5)
소재지 : 서울 특별시 종로구 관철동 45-5 등
이곳은 조선시대에 도성문을 여닫는 시간과 화재와 같은 위급한 상황을 알리는 종이 걸려있던 보신각의 터다.
원래는 종루 혹은 종각이라고 불렀는데 고종때 다시 지으면서 이름을 보신각으로 바뀌었다.
1396년 (태조 5)에 졸루를 짖고 도성문을 열고 닫는 시간을 종을 쳐서 알렸다.
아침을 알리는 파루에 도성문을 열었다. 이때 종을 33번 쳤는데 이는 불교의 33천을 의미한다.
저녁을 알리는 인정에 도성문을 닫았다. 이때 종을 28번 쳤는데 이는 별자리의 28수를 의미한다.
태조때 지어진 종루는 원래 인사동에 있었지만 태종때 지금의 종로로 옮겼다.
화재와 전란으로 인하여 자주 소실되고 다시 지어지곤 하였다.
지금의 보신각은 세종때의 건물규모를 따라 정면 5칸, 측칸 4칸의 누각건물로 지어졌다.
원래 보신각에 있던 서울 보신각 종(보물 제 2호)은 1468년(세조 14)에 주조된 것으로 현재 국립박물관에 있다.
이곳에 있는 종은 1985년에 새로 만들어 설치한 것이다.
보신각은 1919년 3월 독립선언과 광복 이듬새 3.1절 기념행사의 현장으로서 민족사적인 의미가 깊은 곳이다.
(출처 : 서울 문화재)
더 자세한 내용이 알고 싶으시면 서울 문화재 싸이트를 클릭하세요...
서울 문화재 싸이트 http://sca.seoul.go.kr/korean/culturalAsset.jsp?sCode=100648&sClssCode=9&sClssCode2=36
"보신각 터"는 서울시에 등록된 문화재 지역으로 지정된 시간 오전 11시 50분 ~ 12시 10분에만 들어갈 수 있네요.
보신각 타종행사 알리미....
종로 1가 사거리에 위치해 있어 "보신각 터" 바로 앞에 있는 빌딩...
종로 1가 사거리의 한 코너에 위치하고 있어 버스를 타고 지나가면서도 보인다.
너무나 가까이 있어 소중함을 몰랐던 "보신각 터"...
다시한번 우리의 소중한 문화와 역사에 대하여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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