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1.12 피라미드, 스핑크스
오전에 방문한 이집트 박물관에서 수많은 유물에 감탄을 하고
파라미드가 보이는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
이집트여행의 하이라이트인 피라미드 관광을 본격적으로 하였다.
피라미드의 웅장함에 우선 놀라고 피라미드에 사용된 돌 한개의 크기에 또 놀래고
서 있는 사람과 비교를 해보면 돌 한개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 보이지요...
대피라미드에사용된 돌의 평균 높이는 50cm이고
작은돌의 무게는 2t, 큰 돌의 무게는 20t... 사용된 돌의 전체 무게가 약 6백만t이며,
대피라미드에 사용된 302.5t(돌의 평균무게)의 돌 230만개를 밑바닥에서 꼭대기까지
210단으로 쌓아올렸는데 그중 꼭대기의 7단이 무너져 지금은 203단이며,
겉은 시멘트로 지은 건물에 타일을 입히듯이 전체가 흰 석회암의 화장석(마감돌)으로 덮혀있다.
(오른쪽 피라미드 속을 들어가 봄)
그러나, 이슬람 시대에 카이로의 모스크를 짓는데 이 돌을 뜯어다가 사용를 했기 때문에
지금은 속이 다 들어나 겉면이 돌로 쌓은 계단처럼 되어 있다.
원래는 꼭대기도 금을 입힌 파라미디온이 있어 뾰족했으나 떨어지고 없어 지금은 평평하다.
원래는 피라미드에 문이 있었으나 도굴범들의 유물 유출행위가 심하여 폐쇄되었고,
현재 사용하고 있는 출입구는 도굴범에 의해 뚫린 구멍이라 합니다.
돌 하나의 크기를 사람과 비교해 보니...
저렇게 큰 돌을 어떻게 날라 피라미드를 쌓았는지 정말 신기합니다.
대피라미드는 출입이 불가능한 관계로 이웃해 있는 작은 피라미드를 들어가 보았다.
안에 볼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정보를 미리 입수한 몇 분은 들어가지 않고
주위 풍광을 감상하며 짐들을 맡아 놓고 모두 돌아 나오기를 기다리다.
고대 이집트 무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벽화나 돋새김이 없고, 마치 미로와 같은 좁은
통로를 따라 내려가고 올라가면서 서로 충돌 위험도 있고 흙먼지로 공기도 탁하다.
피라미드가 있는 곳은 얼마나 크고 넓은지 버스를 타고 이동을 한다.
버스를 타지 않는 사람들은 낙타를 타고 피라미드 관광을 하기도 한다.
( 두개의 피라미드 오른쪽으로 피라미드 한개가 더 있습니다- 포인트에서)
카이로 중심가에서 남서로 13km, 나일강 서안 사막지대 기자의 석회암 언덕에
세개의 피라미드가 옛 영광을 자랑하듯 웅장한 모습으로 나란히 서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석조건물이라고 합니다.
세 피라미드는 4,500년전 고대 이집트 제4왕조의 2대 파라오 쿠푸 및
4대 파라오 카프라 및 5대 파라오 멘카우라의 피라미드이다.
이들 피라미드에는 「해가 뜨고 지는 곳」, 「가장 위대한 곳」, 「가장 신성한 곳」
이라는 특유의 이름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 낙타를 타고 즐기며 이동을 하는 관광객 - 버스속에서)
세 피라미드 중 가운데 있는 아름다운 피라미드가 파라오 Khafra의 피라미드이다.
Khafra는 파라오 Khufu의 손자이다. Khufr의 대피라미드보다 약간 작지만 꼭대기의 보관
상태가 좋고 밑바닥의 지대가 약간 높아 멀리서 보면 세 피라미드 중에서 가장 높게 보입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피라미드를 정사각뿔 모양으로 만든 것은 구름을 뚫고 내려오는
태양광선을 형상화 한 것이다. 옆면을 경사지게 만든것은 파라오가 죽으면 영생하기
위해서 하늘로 태양광선을 타고 올라간다는 것을 상징한 것이라 합니다.
이처럼 피라미드는 고대 이집트인들의 재생, 부활 ,영생의 사생사관과 태양신을
숭배하는 종교관의 산물이며 태양에 대한 신앙이 파라옹에 대한 신앙으로 연결되었던
고대 이집트에서 피라미드는 바로 파라오의 강력한 왕권의 상징이기도 했다.
신왕국시대에 들어와서는 피라미드 대신 파라오의 무덤은 사막 계곡의 바위를
파서 만드는 무덤으로 바뀌었다. 피라미드가 쇠퇴하면서 장제전과 하얀 신전이 커졌으며,
이것이 다시 신전으로 바뀌어 신왕국시대에는 거대한 신전이 건설되었다 합니다.
「피라미드」의 원래 이름은 「메르」였고 고대 이집트어로 「하늘로 올라간다」는 뜻이며
히에로글리크로는 △ 으로 표현했다.
피라미드라는 이름은 그리스인들이 늘 먹는 사각뿔 모양의 빵 퓨라미스와
비슷하다 해서 붙인 이름이라고 합니다.
4,500여년 전, 까마득한 옛날에
이렇게 거대한 석조건축물을 무엇때문에 왜 어떻게 만들었는지 궁금하지 않을수 없는데
이에 관한 기록이 전혀 없어 고대이집트 문명의 최대 수수께끼로 남아있으며
이것이 신비감을 더해주어 피라미드를 더 유명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 신비함을 증명이나 하듯이
기원전 2세기 무렵 비잔티움의 수학자 필론이 소개한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이 대피라미드 뿐이라 합니다.
(스핑크스 신전)
쿠푸와 카프라의 피라미드 사이를 지나 동으로 뻗어있는 비탈길을 300m쯤
내려가면 바위 언덕에 늠름하게 앉아 있는 대스핑크스를 만난다.
거대한 사자의 몸에 사람의 얼굴을 가진 이 스핑크스는
세계에서 가장 큰 석조 조각으로 파라오와 신의 힘을
사자의 강한 모습으로 표현한 것이라 합니다.
(스핑크스 신전을 통해서 들어가고 나가는 문)
스핑크스 신전을 통해서 들어가고 나가는 문에는 관광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습니다.
돌과 돌의 이음새가 어쩜 저리 조화로운지 새삼 신기하고 감탄할 뿐입니다
(대스핑크스)
대스핑크스는 정확하게 동서를 향해 앉아 있으나 눈은 해가 뜨는 동을 응시하고 있다.
모래속에 묻혀 있던 것을 20세기초에 발굴 했으며,
머리에는 파라오를 상징하는 두건을 쓰고 턱에는 파라오처럼 수염을 달고 있었으나
수염은 떨어져 나가서 지금은 없다.
그 떨어진수염은 로제스타와 함께 대영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합니다.
(썬그라스를 낀 관광객이 앉아있는 자리에서 스핑크스와 키스하는 장면을 찍기도 함)
대스핑크스 머리에는 왕관을 쓰고 있었고
앞 이마에는 왕권을 상징하는 코브라가 새겨져 있었으나 모두 없어졌으며
얼굴의 코 부분이 망가져있고 턱수염이 떨어져 나가고 없다.
나폴레옹 이집트 원정시
병사들이 스핑크스의 얼굴에 대포를 쏘는 바람에 망가진 것이라고도 하고,
혹은 코가 없으면 부활을 할 수 없다는 고대 이집트의 전설을 들은
이슬람군이 망가뜨린 것이라는 설이 있다고 합니다.
(대스핑크스를 바라보는 관광객)
고대 이집트인들은
파라오의 살아 있는 모습이라는 뜻으로 스핑크스를 쉐세프 앙크라고 불렀다.
스핑크스라는 이름은 사람과 사자가 하나로 합친 모습을 한 신화에 나오는 동물을 가리키는
그리스어 스핑크에서 유래되었다 합니다.
낙타와 스핑크스를 비교해 보면 스핑크스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 짐작이 되지요...
엎드린 개와 같은 모습으로 앉아 있는 대스핑크스는 몸의 길이가 73m에 높이 22m이며
얼굴폭이 4m에 귀의 길이 1.4m, 입의 길이 2.3m, 코의 길이 1.7m이다.
머리부분이 실물보다 10배 크고 동체는 22배 크다.
오랜세월 갖은 풍상을 겪으며 지금까지 잘 보존이 되어 왔는데,
대스핑크스의 머리가 떨어질 위험이 있어 이집트 정부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합니다.
아스완 하이댐이 그 원인인데,
댐의 영향으로 지하수의 수위가 높아지면서 지표에 있던 염분이 모세관 현상으로
수분은 증발되고 염분 덩어리가 남아서 스핑크스의 갈라진 곳을
더욱 갈라놓고 있다고 합니다.
(낙타투어를 하는 관광객)
스핑크스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아침에는 네 다리, 낮에는 두 다리, 밤에는 세 다리로 걷는 짐승이 무었이냐」라는 수수께끼를 내고
이것을 풀지 못하면 잡아 먹는 등... 사람들을 괴롭혔다고 합니다.
그런데 용감하고 젊은 오이디푸스가 나타나「그것은 사람이다」라고 수수께끼를 풀자
스핑크스는 굴욕감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는 전설이 있는데....
이 그리스의 스핑크스 수수께끼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나오는 유명한 에피소드로 알려져 있다.
사람은 인생의 아침인 어릴때는 네 발로 기어 다니고,
자라서 인생의 낮인 즉 장년이 되면 두 발로 걸어 다니고 ,
인생의 밤 즉 늙으면 지팡이를 짚고 세발로 걸어 다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기자의 피라미드는 해가 뜨는 새벽이나 해가 지는 저녁 무렵 붉게 물든 노을속에
시간마다 변하는 피라미드의 경관을 감상 하는 것도 이집트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라고 합니다.
어둠이 깊어 질수록 피라미드는 더욱 높이 보이고,
특히 달빛 아래 서 있는 피라미드는
또 다른 느낌의 신비로움을 더 해 준다고 합니다.
(낙타타기...낙타가 벌떡 일어날때 중심을 못 잡으면 떨어질것 같음)
일정표에 낙타타기가 있어 낙타를 타긴 했으나
잡을곳이 마땅치 않아 낙타가 일어설때 중심을 못 잡으면 휘~청 해서 무서웠는데...
역시 가이드들이 혹시나 사고가 날까봐 노심초사하는 모습이었음.
피라미드를 배경으로 가설된 임시부대에서 오페라 아이다가 몇 년에 한 번씩 공연이 되는데
오페라 극장에서의 공연과는 달리 또 다른 신비스러움과 감동이 있다고 합니다.
낙타는 말의 안장처럼 발을 지지하는 곳이 없어서 자세가 불안정한데,
뒤에 타는 사람은 앞사람을 꽉 잡거나 뒤에 있는 손잡이를 잡아야 하는데
낙타의 걸음걸이에 출렁이면서 중심잡고 앉아 있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추락사고도 많이 있지 않았을가 하더라구요...
그래서 그런지 가이드들이
낙타 일어날때가 제일 위험하니 손잡이 꼭 잡으라는 말을 하고 또하고...
오페라 「아이다」는 총독 이스마일의 요청으로
1869년 수에즈 운하의 개통과 카이로 오페라 극장의 개관을 기념하여 만든 것인데,
이집트 고고학 박물관의 초대관장 오귀스트 마리에트가 시나리오를 쓰고
이탈리아 작곡가 베르디가 작곡을 했다 합니다.
아이다는 에티오피아와의 싸움에서 이집트의 젊은 장군 라다메스와 포로가 된
적국의 왕녀 아이다와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로 우리나라에서도 공연을 하고 있다.
( '파노라마 포인트'라고 불리는 모래언덕에서 세 피라미드를 보고 있는 관광객들...)
많은 수수께끼와 신비에 쌓여있는 고대이집트 문명 중
가장 신비한 것이 바로 피라미드...
그 옛날옛적에 천문,점성,지질,수학,기하,토목,건축,과학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학문과 지혜를 총 동원하여 만든것이 바로 피라미드이기 때문이다.
피라미드는 옆면의 세모꼴로 돌을 비스듬히 쌓아 올려 꼭대기에서 만나도록 하여
전체적으로는 정사각뿔 모양이 되도록 만든 석조기념건축물이다
파라오 쿠푸의 대피라미드가 건조된 것은 4,500년~4,500년전 무렵이었으며,
원래 대피라미드의 높이가 146m 이였으나 꼭대기의 일부가 허물어져 지금은 138m...
정 네모 밑바닥의 각변의 길이가 230m이며 경사 각도가 약 51도가 조금 넘는
이등변 삼각형을 이루고 있어 피라미드는 안정감을 준다고 합니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의 신비로움을 가슴에 담고 낙타도 타 보고 잠시동안 즐긴 후 ,
카이로로 되돌아와 아이들에게 선물할 카루투시 목걸이를 제작 주문하고
시장에서 면제품과 스카프를 구입한 후
'미나네' 식당에서 한식으로 오래간만에 저녁식사를 배불리 하였다.
숙소에 도착하여
내일 사막투어에 필요한 짐과 호텔에 맡길 짐을 구분하여 정리한 후,
이집트에 살고있는 옛 부하를 만난 부부를 제외하고
오래간만에 호텔에서 샤워도 하고 편안함을 즐기면서 주위 산책을 하다가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다.
※ 참고문헌 ; 이태원의 고대문명기 이집트의 유혹
'해외여행 > 이집트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집트] 이집트 포토여행기 - 바하리야 사막투어 (12) (0) | 2012.02.26 |
---|---|
[이집트] 이집트 포토여행기 - 바하리야 사막투어 (11) (0) | 2012.02.21 |
이집트 포토여행 - 야경의 콤 옴보신전 (6) (0) | 2011.02.15 |
이집트 포토여행 - 나일 크루즈 (4) (0) | 2011.02.05 |
이집트 포토여행 - 카르나크 신전 (3) (0) | 2011.0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