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1.09 이집트 카르나크 신전
정박하고 있는 나일 크루즈에서 첫밤을 보내고 아침식사를 한 후 , 이집트에 남아있는 신전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카르나크 신전을 가다..
1. 아멘 대신전 첫째 탑문 (스핑크스가 나란히 앉아 있는 신전 입구)
이집트 여행은 고대 이집트의 신전 유적의 여행이며 그것은 곧 신들과 신화의 여행이다. 고대 이집트 인들은 태양··달·별 같은 천체, 하늘·땅·나일 강 같은 자연,
그리고 매·악어·황소 같은 동물 따위 삼라만상에서 불가사의한 신성을 인정하고 이를 신성시 하여 모두 신으로 섬겼다.
가장 오래된 종교문서인 「피라미드 텍스트 (피라미드 내부 벽에 새겨져 있는 고대 이집트의 가장 오래된 장제문서. 죽은자의 영생과 부활을 위한 주문집)」
에만 2백이 넘는 신들이 등장한다. 매일 해가 동에서 뜨고 서로 지고, 계절이 되면 식물이 싹 트고 자라서 꽃 피고 열매 맺고,
해마다 나일강이 범람하여 풍년을 가져다 주고, 심지어는 사람이 죽고 사는 것까지도그들은 신의 뜻으로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람세스 2세가 만든 신 아멘의 신수인 사자의 몸에 숫양의 머리를 가진 스핑크스들이 양쪽으로 즐비하게 앉아있는 참배길 (Cause-way)을 통해서 들어가다.
2.
카르나크 대신전은 약 4천년전 중왕국의 제12왕조때 처음으로 축조되었다. 그 이후 약 2천년에 걸쳐 투트메스3세, 하트셉수트, 아멘호테프 3세,
람세스 2세 등 많은 역대 파라오들이 왕권의 강화와 국가의 번영을 기원하기 위해 신전을 개축하고 증축했다. 그리하여 프톨레마이오스시대에 이르러
카르나크 대신전은 지금과 같은 웅장한 모습을 갖추었다.
탑문을 쌓은 벽돌은 우리나라 흙벽돌과 비슷하다...위의 흙으로 벽돌을 만들어 탑문을 쌓았다고 가이드가 이야기 한 것 같다.
3. 성주사당
첫째 탑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신왕국 제22왕조때 증축한 첫째 안마당이 나온다. 안마당의 북에 세티2세가 만든 성주사당이 있다.
테베의 세 신 아멘, 무트, 콘스가 오페트 축제때 사용할 성스러운 배를 두었던 곳이다.
4. 아멘 대신전 안마당
첫째 안마당의 중앙에 말기 왕조시대 제25왕조의 누비아 출신의 파라오 타하르코(Tahargo:BC.690-664)가 세운 10개의 거대한 파피루스 기둥을 가진
기둥복도가 있었는데 지금은 기둥 하나만 남아 있다. 그 남아있는 한개의 기둥을 보면 기둥복도가 매우 웅장했음을 알수 있다.
그 곁에 제21왕조시대 아멘 신의 신관인 피네젬의 거대한 석상이 서 있다. 붉은 화강암으로 만든 이 석상은 실제로는 람세스 2세의 석상인데
피네젬이 자기이름을 석상에 새겨 놓아 피네젬의 석상이라고 부른다. 석상의 다리 앞에는 람세스 2세의 왕녀 작은 석상이 조각되어 있다.
5. 람세스 3세의 신전
신전의 작은 안마당에 양쪽으로 오시리스 신 모양을 한 파라오의 기둥이 늘어서 있고 맨 안쪽에 작은 기둥홀과 성소가 있다.
6. 아멘 대신전 둘째 탑문
신왕국 제18왕조의 마지막 파라오 호렘해브때 착공하여 제19왕조의 람세스 2세때 완공했다. 이 탑문은 첫째 탑문과 달리 높은 벽처럼 보인다. 탑문 앞 오른쪽에
한쪽 발을 앞으로 내밀고 서 있는 람세스 2세의 거상이 늠름하게 서 있다. 원래 두체가 있었으나 하나만 남아 있고 다른 하나는 파괴되어 양다리만 남아있다.
왼쪽은 하나 남아있는 기둥. 왼편의 석상이 피네젬 석상 (실제로는 람세스 2세 석상이며 다리앞에는 람세스 2세 왕녀 작은 석상이 있음)
7. 큰 기둥홀 (열주실)
카르나크 신전의 하이라이트인 기둥홀은 고대 이집트 기념건축물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신왕국 제18왕조의 아멘호테프 3세
(Amenhotep Ⅲ:B.C.1388-1351)때 착공하여 람세스 2세때 완공되었다. 폭 102m, 안쪽 깊이 53m의 큰 홀에 134개의 거대한 돌기둥이 숲을 이룬다.
큰 기둥홀은 전체적으로 파피루스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원초의 바다」에 태양빛이 비쳐 천지가 창조되는 창조신화의 세계를 상징하고 있다.
가운데 희미하게 보이는 오른쪽의 오벨리스크는 기원전 13세기 무렵, 투트메스 1세가 세웠는데 높이 21.8m, 무게 130t...
원래는 투트메스 오벨리스크는 두개였으나 하나는 로마의 라테라노의 산 조반니 광장에 서 있다 함.
왼쪽의 오벨리스크는 하트셉수트 여왕이 세웠으며 높이 30m,무게 323t 으로 아스완산의 붉은 화강암으로 만들었다.
8.
큰기둥 홀의 거대한 돌기둥에는 투트메스 3세의 연대기, 왕명표 등 매우 가치 있는 역사적 자료와 파라오가 신에게 재물을 바치는 모습,
성스러운 배의 행렬, 신전에서의 생활 모습 등의 돋새김 들이 새겨져 있다. 큰 기둥 홀을 에워싸고 있는 바깥벽에 카데시 전투에서
히타이트와 싸우는 람세스 2세의 전승기념 돋새김 들이 새겨져 있다.
9. 하트셉수트 오벨리스크
하트셉수트의 오벨리스크는 2개 중 하나는 그대로 서 있으나 나머지 하나는 성지 가까이 넘어진 채 땅위에 누워있다.
오벨리스크는 고대 이집트의 기념석주로 태초의 언덕을 상징하는 헬리오폴리스의 성석에서 유래한 길고 끝이 뵤족한 사각 돌기둥이다.
10. 누워있는 오벨리스크
위 오벨리스크에 여왕의 아버지 투트메스 1세를 기념하여 만들었다는 것과 여왕의 왕위계승을 정당화 하는 내용이 히에로글리프로 새겨져 있다.
파피루스 종이를 비롯하여 돌조각이나 무덤과 신전의 기둥이나 벽에 그들이 만든 그림문자를 사용하여 무수히 많은 기록을 남겨놓았다.
이 때문에 고대 이집트 문명을 「문자의 문명」이라도고 한다.
11. 투트메스 오벨리스크
12. 큰 기둥홀
큰 기둥홀의 중앙에 아멘호케프 3세가 세운 파피루스 기둥이 2열로 6개씩 12개가 서 있다. 높이 21m, 직경 3.6m의 큰 기둥으로 활짝 핀 파피루스 꽃 모양의
기둥머리는 그 둘레가 15m나 된다. 아멘호프 기둥의 양쪽에 람세스 2세가 세운 기둥이 122개가 서 있다. 그 높이가 13m에 직경이 2m의 큰 기둥으로
기둥머리는 꽃 봉우리 모양의 파피루스로 장식되어 있다. 큰 기둥 홀은 지붕으로 덮여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지고 그 흔적만 남아있다.
13.
14. 숫자 기록
15. 문자 기록
고대 이집트인들은 5천년 이전에 이미 그들 고유의 그림문자 히에로글리프를 만들어 사용했다. 이 문자를 사용하여 신전의 기둥이나 무덤의 벽화나
파피루스 종이에 그들의 역사와 문화와 생활의 지혜를 기록으로 남겼다. 근세에 와서 신비에 쌓여있던 이 그림문자를 해독하게 되어 고대 이집트의
역사와 문명을 더 깊이 알 수 있게 되었으며 이것이 고대 이집트 문명을 더욱 값지게 만들어 주고 있다.
기원 391년 로마에서 그리스도교가 공인되면서 이집트의 모든 신전이 폐쇄되었다. 이때부터 3천년 넘게 사용해 왔던 고대 이집트의 그림문자도 점차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그레코·로만시대에는 민중문자에 그리스 문자를 섞어서 만든 새로운 문자 콥트문자 (Coptic Alphz-bet)를 사용하면서 히에로글리프는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다. 18세기말 로제타 스톤의 발견으로 히에로글리프를 해독하게 되면서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런던의 대영박물관의 고대 이집트 문명 전시실에 회색 화강암의 석판 「로제타 스톤」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것은 고대 이집트의 그림문자
히에로글리프를 해독하는 열쇠가 된 매우 귀중한 유물이다. 나폴레옹이 이집트 침공시 로제타의 교외에 있는 쥬리안 요새를 수리하다가 마법의
기호같은 글자가 깨알같이 새겨진 검은 현무암의 비석판을 발견하였는데 이것이 이집트 문명의 신비를 푸는 열쇠가 된 유명한 로제타 스톤이다.
16.
고대 이집트의 신전은 혼돈의 바다로부터 천지가 창조되는 창조신화를 나타내고 있다. 신이 인간세계로 내려오면 신전에서 신의 아들 파라오를 만났다.
신전에는 파라오와 시노간만이 들어갈 수 있었고 일반 백성은 축제때만 신전의 안마당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17. 기둥홀의 기둥들....
포즈를 취해주는 아랍인의 카키색 전통의상과 머리의 하얀색 희잡, 오마샤리프 같은 짙은 눈섭과 코수염 등
열주실의 기둥들과 어울림이 너무 좋았다.
18.
큰기둥 홀의 규모와 웅장함에 놀라고 너무 좋아서 오래 머물고 싶은 마음 간절하였지만 일정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19.스카라베 (풍뎅이 )
고대이집트인들이 스카라베(풍뎅이)를 태양신으로 섬겼다는 것이 흥미로운데 나일 강이 범람했다가 물이 빠지면 제일 먼저 땅에 나타나 동물의 배설물을
공처럼 뭉쳐서 굴리고 가는 것이 스카라베였다. 그들은 이 스카라베를 태양을 운반하는 「태양신의 사자」라고 믿었다. 그래서 스카라베를 태양신으로 모셨으며
성스러운 연못가에 큰 스카라베의 돌조각을 볼수 있다. 우리나라의 절에서 탑돌이 하듯이 그들도 돌조각상 주위를 몇바퀴씩 도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고대 이집트 인들은 스카라베를 부적으로도 많이 사용했다 함.
20. 성스러운 연못
고대 이집트인들은 날마다 서로 졌다가 다음날 아침에 동으로 떠 오르는 태양을 죽었다가 재생하는 부활의 상징으로 여겼다. 더욱이 태양은 만물을
자라게 하는 생명의 원천으로 믿고 태양신을 모든신의 으뜸으로 섬겼다. 태양신은 그 역할에 따라 해가 뜰때의 아침 태양은 갓 태어난 어린 태양신으로
케프리(Khepri)라고 불리었으며 재생·부활의 역할을 했다. 중천에 떠 있는 낮의 태양은 성인이된 태양신으로 라(Ra)라고 불리었으며 천지를 다스리는
역할을 했다. 해질 무렵의 태양은 서쪽 지평선을 향해 걸어가는 늙은 태양신으로 아툼(Atum) 이라고 불리었으며 천지창조의 역할을 했다.
케프리와 아툼은 태양신 라의 화신이었다. 태양신 라는 아멘-라 (Amen-Ra)처럼 다른 신과 융합하여 국가 최고의 신이 되기도 했다.
21.
룩소르 나일 강 동안의 북쪽에 자리한 카르나크, 이곳의 옛 이름은 고대 이집트어로 이페트 수트(Ipet Sut)였다, 「고르고 고른땅」이라는 뜻이다.
이땅에 신왕국시대의 국가 최고 신 아멘 라를 위해 세운 카르나크 대신전 (Great karnak temple)이 있다.
카르나크 신전은 동서 540m, 남북 600m의 광대한 규모의 신전이다.
규모와 웅장함에 놀라고 그 시대에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것에 놀라고 기둥과 벽의 돋새김, 상형문자, 벽화 등...그저 탄성만 지를 뿐이었다.
※ 참고문헌 - 이태원의 고대문명 여행기 이집트의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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